국토기행-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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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6.25전쟁 중에 붙잡은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포로수용소로, 전쟁 기간 동안 전국에 세워졌던 포로수용소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고 17만 명이 넘게 수용되었던 장소였다. 6.25전쟁의 참상을 증언하는 사료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수용소 안에서는 북으로의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 포로와 이에 반대하는 반공 포로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고, 이는 여러 차례의 폭동과
탈출 시도로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1952년에는 "거제 포로 소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친공 포로들이 수용소장인 미 육군 F.T. 도드 준장을 납치하고서
포로들에 대한 처우 개선,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 송환 방침 철회, 포로 심사 중지 등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에 당시 콜슨 준장이 이에 대하여 서면 각서를 내고
도드 준장은 석방되었으나 이후 보트너 준장이 전면 무효화를 선언하였다. (영화 <스윙 키즈> 또한 "거제 포로 소요 사건"을 배경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6.25전쟁 중 발생한 첨예한 이념적 대립이 수용소라는 공간에서도 그대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6.25전쟁이 막을 내리고 포로들 중 일부는 북한이나 중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대신 남한이나 제3국으로 가기를 원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의사에 따른 포로 송환
원칙이 적용되었고, 이는 후에 국제법에서 중요한 선례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은 거제시에서 남은 유적 자리에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역사적 자료들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하여, 전쟁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장소로 활용되도록 운영 중이며, 거제시의 관광지 중 하나이다.
우리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생들에게 이번 국토기행 중에 다녀온 곳 중에서 특히 인상깊은 장소로 기억되었다.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고 17만 명이 넘게 수용되었던 장소였다. 6.25전쟁의 참상을 증언하는 사료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수용소 안에서는 북으로의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 포로와 이에 반대하는 반공 포로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고, 이는 여러 차례의 폭동과
탈출 시도로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1952년에는 "거제 포로 소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친공 포로들이 수용소장인 미 육군 F.T. 도드 준장을 납치하고서
포로들에 대한 처우 개선,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 송환 방침 철회, 포로 심사 중지 등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에 당시 콜슨 준장이 이에 대하여 서면 각서를 내고
도드 준장은 석방되었으나 이후 보트너 준장이 전면 무효화를 선언하였다. (영화 <스윙 키즈> 또한 "거제 포로 소요 사건"을 배경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6.25전쟁 중 발생한 첨예한 이념적 대립이 수용소라는 공간에서도 그대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6.25전쟁이 막을 내리고 포로들 중 일부는 북한이나 중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대신 남한이나 제3국으로 가기를 원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의사에 따른 포로 송환
원칙이 적용되었고, 이는 후에 국제법에서 중요한 선례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은 거제시에서 남은 유적 자리에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역사적 자료들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하여, 전쟁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장소로 활용되도록 운영 중이며, 거제시의 관광지 중 하나이다.
우리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생들에게 이번 국토기행 중에 다녀온 곳 중에서 특히 인상깊은 장소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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